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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개/칼럼, 인터뷰, 강의

건강한 교회에 대한 단상 (1)



건강한 교회에 대한 단상 (1)    -  2012.7



건강한 교회는 어떠한 교회일까?

 

교회의 건강성의 척도는 무엇일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한 교회의 건강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1994년 목사 안수를 받은 이래 공부할 때나 목회를  할 때나 항상 건강한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가에 대해 나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목회해 왔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사람들 혹은 그들의 모임으로서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거룩한 무리 즉 성도이며 거룩한 공동체이다.

 

 거룩은 무엇인가?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교회의 건강성의 중요한 척도중의 하나가 바로 이 거룩이다.  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 나는 교회로서 지금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는 분명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즉 거룩한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구별된 삶을 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교회된 성도가 머리된 예수에 의해 움직이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교회가 되기 전에는 나의 생각대로 즉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했고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교회라면 확실히 달라야 한다. 왜 그러한가? 머리가 바뀌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 인간에게 있어서 뇌는 곧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뇌에 의해 사고하며  행동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곧 성도는 예수에 의해 이끌림 바 된 삶을 사는 존재이다. 이를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일컫는다(고후 5,17). 그렇다. 교회는 성도로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된 교회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거룩이다. 거룩한 삶을 사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세상과 분별된 삶을 살되 교만하지 않고 그렇지 못한 삶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몸으로 살아내는 성도가 바로 건강한 교회이다. 이런 길을 예수가 걸어갔다. 오늘의 우리의 삶의 정황속에서 거룩한 삶, 분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가?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 몇가지만 적고자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미 위에서 언급한 예수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길을 걷는 것 그의 삶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영성인데, 건강한 교회는 바로 이 예수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끊임없이 그 길을 걸어가고자 분투하는 삶을 사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건강성은 한 교회가 한 성도가 어느 정도 예수의 영성을 소유하고자 구별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과거도 현재도 아니고 보다 엄밀히 말해 현재진행형이다. 예수의 영성을 몇가지로 서술하면,

 첫째, 예수의 영성은 낮아짐과 자기 비움의 영성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예수의 거룩함의 특징 중의 하나가 낮아지심과 자기 비움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물음의 답에서 영성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낮아질 수 있었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게 하실 수 있었다. 예수를 따르는 건강한 교회는 사랑의 영성을 소유해야 하는데 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과 삶으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저들이 거짓을 말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과 같은 연약한 죄많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최근 고전 13장을 설교하면서 여러번 성도들에게 말한 바 있다. 죄인된 인간이 어떻게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그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유일한 그 방법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에 이끌림 바된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인식할 수 있고 또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령에 예민하게 움직이고 이끌려 살아갈 때 우리 역시 낮아짐과 자기 비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사랑의 영, 생명의 영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분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하여 교회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진정 우리 교회(나는)는 세상의 영에 의해 움직이는가, 아니면 성령에 이끌림 바 된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은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삶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을 특히 죄인들을 차별했다. 하지만 예수는 당시 죄인들, 예를 들면 세리, 창녀,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 이방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연대하시고 그대로 품으셨다. 사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의 친구였다. 그들과 우정을 맺으며 사셨던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이러한 예수의 영성을 진정 배워야 할 것이다. 나같은 목회자들은 더욱 깨어 이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먼저는 교회 안의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진정으로 품음과 동시에 어려운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더욱 주의 사랑으로 품고 돌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고통당하며 소외당하며 절망과 고통속에 신음하며 울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진정 사랑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내거 속한 공동체의 식구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다가감으로 이러한 영성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먼저 주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외형으로 -그의 수입, 학벌, 지위나 직업 등으로-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영성이 곧 예수의 영성이다.

 

 세째로 거룩은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하기 보다 받고자 하기 보다 먼저 대접하고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 곧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셨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나누는 삶을 사는 교회 성도가 되자. 이것이 거룩이요 예수가 걸어갔던 길이다.

 

우리도 예수의 길을 걷자.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서로 서로 격려하며 본을 보이자.

 

건강한 예수마을 공동체를 그리며 몇 자 적었다. 우리 공동체를 진정 사랑하는 자만이 예수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당신은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가?